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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받아 소중한 한 표 행사하는 장애인
20대 발달장애인을 아들로 둔 민모(58)씨는 이번 6·3 대통령선거 투표소에 아들을 데려갈지 망설이고 있다. 아들은 "나도 새 대통령을 뽑고 싶다"고 성화지만, 투표소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한 탓이다.
현행법은 정신적 장애로 기표소에 홀로 들어가 투표하기 어려운 선거인에게 보조인의 지원을 허용하지 않는다. 민씨는 "아들과 함께 탄핵 집회도 나갔는데, 정작 조기 대선에 아들을 위한 자리는 없는 것 같아 허탈하다"고 털어놨다.
시각장애인 안모(42)씨도 투표가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안씨는 "선거 때마다 점자형 공보물이 오지만, 정보가 불충분하고 오탈자도 많다"며 "점자를 못 읽는 시각장애인은 후보 이름과 정당만 알고 '묻지마 투표'를 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장애인의 날인 4월 20일을 앞두고 장애인과 그 가족이 3명 중 2명꼴로 투표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지난달 말 '장애인 선거 참여 환경 모니터링'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인권위 의뢰로 '사회복지연구소 가치'가 지난해 4월 제22대 총선 직후 장애인과 가족 220명을 조사한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선거 당시 투표시설과 장애인 투표 편의 제공 서비스에 대해 안내받았고 정보가 충분했다'고 응답한 이는 32.3%(71명)에 불과했다.
응답자 41.8%(92명)는 '안내받았으나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답했고, '정보를 전혀 제공받지 못했다'고 답한 사람도 25.9%(57명)나 됐다.
'장애인을 위한 투표시설과 편의 제공이 투표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29.5%(65명)가 '매우 그렇다', 44.5%(98명)가 '조금 그렇다'고 답해 4명 중 3명꼴로 영향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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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피플퍼스트 등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2022년 9월 28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발달장애인의 공직선거 정보접근권 보장을 위한 차별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투표 보조를 허용하는 등 장애인 참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22대 국회에서 현재까지 13건 발의됐으나 모두 본회의 문턱을 못 넘고 있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12월 발달장애인 2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차별 구제 청구 소송에서 정당 로고나 후보자 사진 등을 이용한 투표 보조 용구를 제공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조사를 이끈 김홍철 사회복지연구소 가치 대표는 "이번 대선은 준비기간이 짧아 장애인을 위한 공보물을 제대로 내놓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며 "선관위뿐 아니라 정당도 전담 기구를 둬 장애인 참정권 보장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