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삶 연극으로 보여주는 게 먼저…토론은 그다음이죠"
〔인터뷰〕연극 '가장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죠?' 천쓰안 작가
김병용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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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9 15:12 | 최종 수정 2024.03.2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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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플루언서 자오홍청 실화 바탕
"내면의 두려움을 직면하는 이야기"
"이 세상 90% 사람들은 장애인과 교류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장애인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인식합니다. 차별보다는 무시가 장애인에게 더 큰 상처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휠체어 장애인을 만나면 신기하다는 듯 말을 걸던 사람들이 막상 문이 열리자 장애인을 위한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사람들의 무시가 익숙한 여성은 자신의 특기가 웃어넘기기라며 자조적인 웃음을 짓는다.
지난 27∼28일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제7회 중국희곡 낭독공연' 무대에 오른 연극 '가장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죠?'는 휠체어를 탄 중국인 장애 여성 자오홍청의 삶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대본을 쓴 천쓰안 작가는 28일 공연을 앞두고 연합뉴스와 만나 "사람들에게 장애인의 삶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심층적인 문제에 관한 토론은 그 이후가 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작가는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비리비리에서 장애인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동명의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대본을 썼다. 상하이에 거주하는 자오홍청은 2019년부터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어려움과 이에 대한 조언을 공유한 영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전작 '보통사람의 꿈' 등 소소한 일상을 포착해 연극으로 만드는 작업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에게 자오홍청의 이야기는 작품이 되기 충분했다. 그가 보기에 자오홍청의 이야기는 장애인 관객을 포함한 폭넓은 관객에게 공감을 살 수 있는 소재였다.
천쓰안 작가는 "자오홍청의 영상에는 결혼생활 속 에피소드 등 평범한 여성의 생활상도 담겨있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며 "장애인뿐 아니라 성소수자, 중하층민 여성 등 자신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자오홍청의 삶을 무대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일상생활 속 작은 불편함이 장애인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작품의 독특한 제목 역시 자오홍청이 외출할 때 가장 먼저 장애인 화장실 여부를 따진다는 이야기에서 착안했다.
그는 "비장애인들은 화장실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 없지만, 장애인들은 화장실을 찾지 못하면 외출하기 싫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연극을 통해 토론을 일으키고 현실을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초연을 올릴 당시에는 작품의 모델인 자오홍청이 직접 무대에 올라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작가는 무대 위에서 장애를 가진 자기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배우의 모습에 감명받은 관객이 많았다고 전했다.
작가는 "자오홍청이 엄마에게 솔직한 내면을 털어놓는 장면에서 성소수자 관객들이 감명받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어머니를 데리고 공연을 보러 갔다가 공연이 끝난 뒤 커밍아웃했다는 글도 접했다.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을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에 관객들이 공감해주셨다"고 돌아봤다.
천쓰안 작가는 문화적 배경이 다른 한국에서도 자오홍청의 이야기가 울림을 주는 모습에 만족스러웠다는 평을 들려줬다. 1인극으로 풀었던 중국 공연과 달리 배우를 추가하고 코믹한 분위기를 더한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한국 낭독공연을 보고 큰 놀라움과 기쁨을 얻었습니다. 한국 관객들을 보며 사람들은 문화적 배경이나 언어 등 다른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고도 희곡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배웠습니다."
국립극단과 한중연극교류협회가 공동주최하는 '제7회 중국희곡 낭독공연'은 오는 31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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